주역노트 75
第 九 章
○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이니,
하늘은 하나요, 땅은 둘이다. 하늘은 셋이요, 땅은 넷이다. 하늘은 다섯이요, 땅은 여섯이다. 하늘은 일곱이요, 땅은 여덟이다. 하늘은 아홉이요, 땅은 열이다.
[註] 이 順序는 본래 第十章의 머리에 있었는데 程子께서 이르기를, ‘마땅히 여기에 있어야 한다.’ 이에 이를 따른다. 이는 天地의 數로 陽은 홀수이고 陰은 짝수임을 말한다. 즉 이른바 河圖인 것이다. 그 位가 一六은 아래에 있으며, 二七은 위에 있다. 三八은 左에 있고, 四九는 右에 있다. 五十은 中에 있다. 이 章에 나아가 이를 말하면 가운데 五는 넓게는 어머니가 되고, 다음의 十은 넓게는 자식이 된다. 다음 一二三四는 四象의 자리가 되며, 다음 六七八九는 四象의 數가 된다. 二老는 西北의 자리가 되고, 二小는 東南에 자리가 있으니 그 數가 곧 그로써 각각 그 類가 밖에서 交錯하는 것이다.
○天數五요, 地數五니 五位相得하며 而各有合하니 天數二十有五요, 地數三十이라. 凡天地之數五十有五니 此所以成變化하며 而行鬼神也라.
하늘의 수가 五요, 땅의 수가 五니, 五位가 서로 얻어 각각 합함이 있으니 하늘의 수가 25요, 땅의 수가 30이다. 무릇 하늘과 땅의 수가 55이니 이것이 소이 변화를 이루며 귀신의 신비함을 행한다.
[註] 이 순서는 본래 大衍의 뒤에 있는 것인데 이제 살펴보니 마땅히 여기에 있어야 한다. 天數五란 것은 一三五七九로 모두 홀수이고, 地數五란 것은 二四六八十으로 모두 짝수이다. ‘서로 얻는다.’ 함은 一과 二, 三과 四, 五와 六, 七과 八, 九와 十이 각각 홀수와 짝수로서 類가 되고 스스로 서로 얻는 것을 말한다. ‘合함이 있다.’는 것은 一과 六, 二와 七, 三과 八, 四와 九, 五와 十으로 모두둘이 서로 합하는 것을 말한다. 二十五는 홀수인 五가 쌓인 것이요, 三十은 짝수인 오가 쌓인 것이다. ‘변화한다.’는 것은 一이 변하여 水가 생기면 六이 化하여 그것을 이루고, 二가 化하여 火가 생기면 七이 변하여 그것을 이루고, 三이 변하여 木이 생기면 八이 化하여 그것을 이루고, 四가 化하여 金이 생기면 九가 변하여 그것을 이루고, 五가 변하여 土가 생기면 十이 化하여 그것을 이룬 것을 말한다. 鬼神은 무릇 홀수와 짝수가 만물을 生成할 때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며,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 것을 말한다.
○大衍之數五十이니 其用은 四十有九라. 分而爲二하여 以象兩하고 掛一하여 以象三하고 揲之以四하여 以象四時하고 歸奇於扐하여 以象閏하니 五歲에 再閏이라. 故로 再扐而後에 掛하나니라.
大衍의 數가 50이니 이것을 사용하는 數는 49策이다. 49策을 둘로 나누어서 天地를 형상하고 한를 걸어서 그로서 三才(天,地,人)를 본뜨고 4로 세어서 4時를 본뜨고, 奇數로 蓍草를 손가락사이에 끼워 윤달(閏)을 본뜬다. 5年만에 두 번 윤달이 된다. 그러므로 다시 시초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뒤에 걸어 놓는다.
[註] 大衍의 數 50은 대개 河圖中宮天 五가 地十을 곱해서 이를 얻고 이로써 筮를 사용함에 이르면 또한 다만 49策만 사용한다. 대개 이치와 勢가 자연스런 데서 모두 나왔으니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능히 덜고 더할 수 있는바가 아닌 것이다. ‘兩’은 天과 地를 말한다. 掛는 그 1을 왼손 작은 손가락 상이에 끼우는 것이다. ‘三’은 三才(天,地,人)이다. ‘揲’은 손가락 사이에 있는 것을 세는 것이다. ‘奇’는 4개씩 세고 난 나머지 數이다. ‘扐’은 왼손 가운데 손가락인 셋째손가락의 양사이이다. ‘閏’은 月의 나머지 日을 쌓아서 이룬 月인 것이니 五年間의 다 쌓은 日로 해서 다시 이룬 月이다. 그러므로 5年中에 무릇 다시 윤달이 있는 연후에 별도로 여분을 쌓은 것으로 일으켜 하나를 걸어놓은 다음에 좌우에 각각 한 번씩 세어서 한 번씩 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 번 중에 무릇 다시 낀 것이 있는 연후에 별도로 하나를 일으켜 걸어놓은 것이다.
○乾之策이 二百一十有六이요, 坤之策이 百四十有四라. 凡三百有六十이니 當期之日하고,
乾의 策이 216이요. 坤의 策이 144이다. 무릇 360이니 1年 日數에 해당하고,
[註] 무릇 이 策數는 四象에서 생긴다. 대개 河圖四面에, 太陽은 1이 居하나 9에 連해있고, 陰은 2에 居하나 8에 連해있고, 少陽은 3에 居하나 7에 連해있고, 太陽은 4에 居하나 6에 連해 있다. 蓍策은 세는 법이 곧 세 번 변하는 나머지 계산을 통해서 그 처음 걸어놓은 하나를 제거하니 무릇 4가 홀수가 되고, 무릇 8이 짝수가 되니 기는 圓워으로 둘레가 3배이고, 偶는 方이니 둘레가 4배가 된다. 3은 그 全部를 사용하고, 4는 그 半을 사용한다. 쌓은 그것을 數로 하면 6,7,8,9가 되고, 차례로 세 번 변한 數의 策數를 또한 다 모아서 붙인다. 대개 나머지 셋이 奇면 9가되고 그것을 세어보면 역시 9며 策數 역시 4와 9이니 36이 되며, 이것이 1에 居한 太陽이 된다. 나머지 2가 奇가 되고 1이 偶가 되면 8이나 그것을 세는 것은 역시 8이다. 策數 역시 4와 8이니 32가 되며, 이것이 2에 居한 少陰이 된다. 2가 偶가 되고 1이 奇가되면 7이나, 그 세는 것 역시 7이 策數 역시 4와 7이니 28이 되며 이것이 3에 居한 少陽이 된다. 3이 偶가 되면 6이나 그 세는 것은 역시 6이다. 策數 역시 4와 6이니 24가 되며 이것이 4에 居한 老陰이 된다. 이는 그 變化, 往來, 進退, 離合의 妙이며, 모두 자연에서 나오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少陰은 물러가서 虛에 다하지 아니하고, 少陽은 나아가서 가득 차는데 다하지 아니 한다. 그러므로 이는 유독 老陽과 老陰으로 乾坤六爻의 策數를 계산하면 나머지는 가히 미루어 아는 것이다. 期는 1年의 주기이니 무릇 365일과 하루의 4분의 1이다. 이는 특별히 이루어진 數를 거론한 것이니 대개 이를 말한 것 뿐이다.
○二篇之策이 萬有一千五百二十이니 當萬物之數也하니.
2편의 책수가 11520이니 만물에 마땅한 수이다.
[註] 二篇 은 上下의 經을 말한다. 무릇 陽爻가 192니 6912策을 얻고 陰爻가 192니 4608策을 얻는 수를 合한 것이다.
○是故로 四營而成易하고 十有八變而成卦하니,
이런 까닭에 네 번 경영해서 역을 이루고, 여덟 번 변해서 괘를 리루게 된니,
[註] 四營은 一괘를 二로 나누어 네 번 센 奇數로 돌아가는 것이다. 易 은 變 하고 바뀌는 것이니 한 번 변하는 것을 말한다. 세 번 변하면 爻를 이루고, 열여덟 번 변하면 六爻를 이룬다.
○八卦而小成하여,
8괘는 小成괘를 이루고,
[註] 아홉 번 변해서 三획을 이루니 內괘를 얻은 것이다.
○引而伸之하며 觸類而長之하면 天下之能事畢矣니라.
이것을 이끌어 펴서 同類에 접촉시켜 이를 자라게 하면 天下에 할 수 있는 일이 끝난다.
[註] 이미 六爻를 이루어 그 爻의 變하고 變하지 않는 것을 보고 그로서 動과 靜을 삼으니 곧 一卦가 가히 變하게 되고, 六十四괘가 되어 그로서 吉凶을 定하는 것을 말한다. 무릇 四千九十六卦이다.
○顯道하고 神德行이라. 是故로 可與酬酌이면 可與祐神의니,
道를 나타내고 德을 신성하게 하는 것이 다 이런 까닭에 함께 수직할 수 있으면 가히 더불어 神을 도울 것이다.
[註] 道는 말로 인해서 나타나고, 行은 數로서 神祕하게 된다. 酬酌은 應對하는 것을 말한다. ‘神을 도운다.’는 것은 神의 造化의 功을 도우는 것이다.
○子曰 知變化之道者其知神之所爲乎인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變化의 道를 아는 者는 그 神이 하는 바를 알진저.
[註] 變化의 道는 곧 윗글의 數를 계산하는 법이 이것이다. 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럼으로 부자께서 탄식하고 門人이 子曰을 더하여 그로써 上文을 구별한 것이다.
※ 이 章은 天地 大衍의 數로 蓍策을 세워서 괘를 구하는 법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역시 생략되었다. 그 뜻이 자세한 것은 大 卜筮人의 官에 갖추어 있으나 지금은 가히 상고할 수가 없을 뿐이다. 그 가히 미루는 것은 역학계몽에 이를 갖춘 것을 말한다.
第 十 章
○易有聖人之道四焉하니, 以言者는 尙其辭하고, 以動者는 尙其變하고, 以制器者는 尙其象하고, 以卜筮者는 尙其占하나니,
易에 聖人의 道가 넷이 있으니 이로써 움직이려는 자는 그 變化를 숭상하고 이로써 그릇을 만드는 者는 그 象을 숭상하고 이로써 점을 치려는 자는 그 점괘를 숭상한다.
[註] 이 넷은 모두 변하는 道이니 神이 하는 바인 것이다.
○是以君子將有爲也하며 將有行也에 問焉而以言하거든 其受命也如嚮하여 无有遠近幽深이 遂知來物하나니 非天下之至精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이로써 군자는 장차 할 일이 있는 것이며, 장차 행할 일이 있는 것이니 물어 보아서 그로써 말 하거든 그 命을 받는 것이 마치 메아리 같아서 遠近幽深이 없이 드디어 物이 오는 것을 아니 천하의 지극한 精密함이 아니면 그 누가 여기에 동참할 수 있으리오.
[註] 이는 말을 숭상하고 占을 숭상하는 일이니 사람이 蓍策으로서 易을 묻고 그 卦爻의 말을 구하여 그로써 발하는 말이 일에 처하게 되면 易이 사람의 命을 받아서 그로써 告하는 것이 있어,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應하는 것과 같아서 그로써 그 未來의 吉凶을 결단하는 것이다. 말로써 더불어 그로써 말하는 것은 그 말을 숭상하는 일을 말한 것으로서 뜻이 같다. 命은 곧 장차 점을 쳐서 蓍策의 말을 告하면 점친 날에 冠禮를 하고, 宰가 오른쪽에서 命을 도우는 것이 이것이다.
○參伍以變하며 錯綜其數하여 通其變하여 遂成天地交하며 極其數하여 遂定天下之象하니 非天下之至變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伍를 세 번 함으로서 변하고 그 수를 錯綜하여 그 변화를 통하여 드디어 天地의 文을 이루고 그 數를 極하여 드디어 천하의 象을 정하니, 天下의 至極한 변함이 아니라면 그 누가 여기에 동참 할 수 있겠는가?.
[註] 이것은 象을 궁상하는 일이니 변하면 象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參은 이를 세 번 셈하는 것이고, 伍는 이를 다섯 번 셈하는 것이다. 이미 參으로써 변하고 또한 伍로써 변하니 한 번은 먼저하고 한 번은 뒤에 하여 다시 서로 상고해서 그로써 그 많고 적은 實을 살피는 것이다. 錯은 사귀어 서로 하는 것이니 한 번은 왼쪽, 한 번은 오른쪽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綜은 다 모아서 매는 것이니 한 번은 아래서 하고 한 번은 위에서 하는 것을 말 한다. 이 역시 蓍策을 세어서 괘를 구하는 일을 말한다. 대개 세 번 세어 양손의 策을 통해서 그로써 陰陽과 老少의 획을 이루고 七八九六의 數를 窮究해서 그로써 괘효가 動靜하는 象을 定한다. 參伍錯綜은 모두 古語이고 參伍는 더욱 밝히기가 어렵다. 살펴보건대 苟子가 이르기를, ‘敵의 변화를 엿보아 제어하고 伍로써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였고. 韓非子가 말 하기를 ‘같고 다른 말을 살펴서 그로서 朋黨이 분열하는 것을 알고 參伍의 짝을 경험해서 그로서 말을 實을 責함을 알아야 한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參으로써 이 物이 되고 伍로써 參에 合한다.’ 하였다. 史記에 이르기를, ‘반드시 參으로써 伍를 한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參伍를 잃지 않는다. 하였고, 漢書에 이르기를, ’參伍로 그 買를 해서 類로써 서로 平準한다.‘ 하였으니 이로써 족히 서로 밝게 밝히는 것이다.
○易은 无思也하며 无爲也하여 寂然不動이라가. 感而遂通天下之故하나니 非天下之至神이면 其孰能與於此리오.
역은 생각함이 없으며, 하는 일도 없다. 고요해서 움직이지 아니하다가 사물에 감응하여 드디어 천하의 연고에 통한다. 천하의 지극히 신비함이 아니면 그 누가 이에 함께 할 수 있겠는가?
[註] 이 네 가지의 體를 세운 까닭은 소이 행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易은 괘의 蓍策을 가리키는 것이며, 생각함도 없고, 하는 일도 없다고 한 것은 그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고요하다는 것은 감응의 體이고, 감응하여 통한다는 것은 고요함의 쓰임이다. 사람의 마음이 妙헤게도 그 動靜이 또한 이와 같다.
○夫易은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니,
대저 易은 聖人이 深奧한 理致를 다 밝히고 幾微를 살피는 것이다.
[註] 硏은 審(살필 심)의 뜻과 같다. 幾는 기미이다. 심오한 이치를 다 밝힌다는 것은 지극히 精細緻密한 것이다. 소이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변화가 지극한 것이다.
○唯深也故로 能通天下之志하며 唯幾也故로 能成天下之務하며 唯神也故로 不疾而速하며 不行而至하나니라.
오직 그 이치가 깊기 때문에 천하의 뜻에 통할 수 있으며 오직 기미에 밝기 때문에 천하에 힘쓸 것을 이를 수 있으며 오직 신묘하기 때문에 힘써 빨리 하지 않아도 이르게 된다.
[註] 소이 뜻을 통해서 힘써 이루는 것은 神이 하는 바다.
○子曰 易有聖人之道四焉者此之謂也라.
공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易에 聖人의 道가 넷이 있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 이 章은 上章의 뜻을 이어 易의 쓰임을 말한 것이며, 이는 네 가지가 있는 것이다.
第 十一 章
○子曰 夫易은 何爲者也요, 夫易은 開物成務하여 冒天下之道하나니 如斯而已者也라. 是故로 聖人이 以通天下志하며 以定天下之業하니 以斷天下之疑하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저 易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대저 易은 事物을 열어 힘쓸 것을 이루게 하고, 天下의 道를 다 무릅쓰는 것이니 이같이 할 뿐이다. 이런 까닭으로 聖人이 그로서 천하의 뜻에 통하며, 그로서 천하의 業을 定하며, 그로서 천하의 의심을 판단한다.
[註] 사물을 열어 힘쓸 것을 이루게 한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점을 쳐서 吉凶을 앎으로써 事業을 이루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천하의 道를 무릎쓴다는 것은, 卦, 爻를 이미 베플어서 천하의 道가 모두 그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한다.
○是故로 蓍之德은 圓而神이요, 卦之德은 方而知요, 六爻之義는 易以貢이니 聖人이 以此로 洗心하여 退藏於密하며 吉凶에 與民同患하여 神以知來하고 知以藏往하나니 其孰能與於此哉리오, 吉之聰明叡知神武而不殺者夫인저.
이런 까닭으로 蓍草의 德은 원만하고도 신비롭고, 괘의 德은 방정함으로써 물러가서 은밀한 속에 감추어 간작하고, 聖人이 이로써 마음을 깨끗이 씻어 물러가서 은밀한 속에 감추어 간직하고, 吉凶을 백성들과 함께 근심하여 신묘로써 미래를 알고 지혜로써 지나온 일을 마음속에 감추어 버리니 그 누가 능히 이에 함께 할 수 있겠는가. 옛적에 총명하고 예지가 있고 신묘한 武勇이 있으면서 사람을 죽이지 않는 자인저.
[註] 원만하고 신비롭다는 것은 변화의 方所가 없는 것을 말하고, 방정함으로써 지혜롭다는 것은 일에는 定한 이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 易으로써 공헌한다는 것은 변화를 易으로써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聖人이 세 가지의 德을 체득하여 갖추니 한 티끌만치도 연루됨이 없다. 일이 없으면 그 마음이 고요해서 남이 능히 엿볼 수 없고, 일이 있으면 神의 지혜를 사용하여 느낌을 따라서 應하는 것이니 이른바 점을 치지 않아도 吉凶을 아는 것이다. 신묘한 武勇이 있으면서도 죽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이치를 얻어서 그 物을 빌리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是以明於天地道而察於民之故하여 是興神物하여 以前民用하니 聖人이 以此齋戒하여 以神明其德夫인저.
이로써 하늘의 道에 밝고, 백성의 연고를 살펴서 이에 神物을 일으켜서 그로서 백성들의 쓰임에 앞장서니 聖人이 이로서 재계하여 그 德으로서 神明하게 한다.
[註] 神物은 蓍・龜를 말한다. 고요하여 한결같이 순수한 것을 齋라 하고, 엄숙히 두려워하고 놀라워하는 것을 戒라 한다. 天道를 밝혔기 때문에 神物이 가히 일어남을 알고, 백성의 연고를 살피기 때문에 그 쓰임이 그 먼저 여는 것으로서 잊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로서 점치는 것을 짓게 하여 사람을 가르침으로서 그 마음으로 하여금 神明을 헤아리지 못하고 귀신이 올 수 있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是故로 闔戶를 謂之坤이요, 闢戶를 謂之乾이요, 一闔一闢을 謂之變이요, 往來不窮을 謂之通이요, 見을 乃謂之象이요, 形을 乃謂之器요, 制而用之를 謂之法이요, 利用出入하여 民咸用之를 謂之神이라.
이런 까닭으로 문이 닫히는 것을 坤이라하고, 문이 열리는 것을 乾이라 하고, 한 번 닫히고 한 번 열리는 것을 變한다 하고, 오고 감이 다함이 없는 것을 通한다 하고, 나타나는 것을 일러 곧 象이라 하고, 현태가 있는 것을 이에 器物이라 하고, 만들어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法이라 하고, 기물을 이용하여 物을 출입하여 백성이 모두 이를 사용하는 것을 神이라 한다.
[註] 闔闢을 動靜의 기틀이니 먼저 坤을 말한 것은 靜으로 말미암아 動하는 것이다. 乾坤이 변하여 通하여 지는 것은 化育의 功이며, 象이 나타나 기물의 형태가 있게 된 것은 物이 생긴 순서이다. 法은 聖人이 道를 닦아서 하는 바이고, 神은 백성이 자연히 날마다 쓰는 것이다.
○是故로 易育太極하니 是生兩儀하고, 兩儀生四象하고 事象이 生八卦하니,
이런 까닭으로 易에 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兩儀를 낳고, 兩儀가 四象을 낳고, 四象이 八卦를 낳으니,
[註] 一이 매양 二를 낳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易은 陰陽의 변화요, 太極은 그 이치이다. 兩儀는 비로서 一획을 긋게 되어 그로서 陰陽을 나누고, 四象은 다음으로 二획을 긋게 되어 그로써 太・少를 나누었고, 八卦는 다음으로 三획을 긋게 되어 三才의 象이 비로서 갖추어지니 여기서 數로 말한 것은 實로 聖人이 易을 지은 자연스런 차례이며, 털끝만큼도 지혜의 힘을 빌려서 이룬 것은 있지 않다. 괘를 긋고 蓍策을 세는 그 순서가 모두 그러하니 序例啓蒙에 자세히 볼 수 있다.
○八卦定吉凶하고 吉凶이 生大業하나니라.
八卦는 吉凶을 定하고, 吉凶이 大業을 낳는 것이다.
[註] 吉함이 있고 凶함이 있으니 이것이 大業을 낳는다.
○是故로 法象이 莫大乎天地하고 變通이 莫大乎四時하고 縣象著明이 莫大乎日月하고 崇高莫大乎富貴하고 備物하며 致用하며 立成器하여 以爲天下利莫大乎聖人하고 探頤索隱하며 鉤深致遠하여 以定天下之吉凶하며 成天下亹亹者莫大乎蓍龜하니라.
이런 까닭에 法象은 天地보다 큰 것이 없고, 변하고 통하는 것은 四時보다 큰 걷이 없고, 象을 밝게 나타내는 것이 해와 달보다 더 큰 것이 없고, 崇高한 것은 富貴보다 더 큰 것이 없고, 물건을 갖추어 쓰이게 하며, 그릇을 만들어 그로써 天下를 이롭게 하는 것은 聖人보다 더 큰 것이 없고, 깊은 이치를 탐구하여 숨은 이치를 찾아내며, 깊은데 있는 것을 끄러내고 먼데 있는 것을 이르게 하여 그로써 天下의 吉凶을 定하며, 천하의 사람들을 힘쓰게 하는 것은 蓍龜보다 큰 것이 없다.
[註] 富貴는 천하의 임금의 位를 밟고 있는 것을 말한다. ‘立’字 아래 빠진 글이 있는 것은 의심스럽다. 미미(亹亹)는 勉勉(힘쓸 면)과 같은 뜻이다. 의심하면 게으르게 되고, 결단 함으로 힘쓰는 것이다.
○是故로 天生神物이어늘 聖人이 則之하며 天地變化어늘 聖人이 效之하며 天垂象하며 見吉凶이어늘 聖人이 象之하며 河出圖하며 洛出書어늘 聖人이 則之하니,
이런 까닭으로 하늘이 神物을 내 놓으니 聖人이 그것을 이용하는 법칙을 만들고 천지가 변화하니 聖人이 이를 본받고, 하늘이 象을 드리워 吉凶을 나타내니 聖人이 이를 본뜨며 黃河에서 圖가 나오며 洛水에서 書가 나오니 聖人이 이를 법칙으로 하니,
[註] 이 네 가지는 聖人이 易을 지은 까닭이다. 河圖와 洛書는 啓蒙에 자세히 나타나있다.
○易有四象은 所以示也요, 繫辭焉은 所以告也요, 定之以吉凶은 所以斷也라.
易에 四象이 있는 것은 소이 보이는 것이요, 繫辭가 있는 것은 소이 알려주는 것이요, 이로서 吉凶을 定하는 것은 그로서 판단하는 것이다.
※ 이 章은 오로지 점치는 것을 말한다.
第 十二 章
○易曰 自天祐之라. 吉无不利라 하니 子曰 祐者는 助也니 天之所助者順也요, 人之所助者信也니 履信思乎順하고 又以尙賢也라. 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也니라.
易에 말하기를, ‘하늘로부터 도우니 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돕는다는 것은 도와준다는 것이니 하늘이 도와ㅣ 주는 것을 따르는 것이요, 사람이 도와주는 것은 믿음dl 있기l 때문이다. 믿음을 이행하여따르는 것을 생각하고 이로써 또한 어진 이를 숭상하니 이로써 하늘로부터 도와서 길하고 이롭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註] 14번 火天大有卦 ䷍ 上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있어 소속이 없는 이것이 두려운 곳은 혹 錯簡인지 8장의 末에 있는 것이 마땅하다.
○子曰 書不盡言하며 言不盡意니 然則聖人之意를 其不可見乎아 子曰 聖人이 立象하여 以盡意하며 設卦하여 以盡情僞하며 繫辭焉하여 以盡其言하며 變而通之하여 以盡利하며 鼓之舞之하여 以盡神하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글은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며, 말은 뜻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하였다. 그렇다면 聖人의 뜻을 그 가히 볼 수 없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聖人이 象을 정립하여 그로서 뜻을 다 표현하며 괘를 베풀어서 참과 거짓을 다 표현하며 괘에 말을 매어서 그로써 그 말을 다하며, 변하고 통하는 그로써 이로움을 다하며, 북치고 춤추게 하여 그로써 신묘함을 다 한다.‘하였다.
[註] 말이 傳하는 바의 것은 얕고, 象이 보이는 바의 것은 깊다. 홀수와 짝수 두 획의 포함된 변화를 살펴보면 窮盡함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하고 통하는 그로써 이로움을 다하며 북치고 춤추게 하여 그로써 신묘함을 다한다. 한 것은 일로서 말한 것이다. ‘子曰’字 둘은 의심하건데 그 하나는 衍文일 것이다. 대개 ‘子曰’字는 모두 후세 사람이 더한 것으로 이런 과오가 있다. 近世의 書에(책) 通하는 것은 이에 周子가 스스로 지은 바이니 역시 후세 사람이 되고, 매 章마다 周子가 ‘子曰’ 字로서 더한 것은 그 문답을 설치하는 곳이 正히 이와 같은 것이다.
○乾坤은 其易之縕耶인저. 乾坤이 成列而易이 立乎其中矣니 乾坤이 毁則无以見易이요, 易을 不可見則乾坤이 或幾乎息矣리라.
乾坤은 易이 쌓인 것이라 乾坤이 갈라지게 되어 易이 그 가운데서 세워진 것이니 乾坤이 무너지면 그로써 易을 볼 수 없고, 易을 볼 수 없으면 乾坤은 아마 혹 거의 종식 되리라.
[註] 縕은 쌓인 것을 싸고 있는 바가 옷을 입은 것과 같은 것이다. 易에 있는 바는 陰陽일 뿐이니 무릇 陽은 다 乾이고, 무릇 陰은 다 坤이다. 괘를 긋고 位를 定한, 즉 이 두가지 것이 갈라지게 되어 易의 體를 세운 것이다. 乾坤이 무너지면 괘의 劃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乾坤이 종식되면 변화를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是故로 形而上者를 謂之道요, 形而下者를 謂之器요, 化而裁之를 謂之變이요, 推而行之를 謂之通이요, 擧而措之天下之民을 謂之事業이라.
이런 까닭으로 形으로부터 그 이상인 것을 도라 이르고, 形으로부터 그 이하를 器라 이르고, 化하여 마름질 함을 變한다 이르고, 推移해서 행하는 것을 通이라 이르고, 들어서 천하의 백성에게 두는 것을 事業이라 이른다.
[註] 卦・爻・陰・陽은 모두 形으로부터 이하인 것이니 그 이치는, 즉 道이다. 그 자연히 化하고 裁制하는 것이 變의 뜻이다. 變과 通 두 字는 上章에서는 天으로써 말했고, 이 章에서는 人으로써 말했다.
○是故로 夫象은 聖人이 有以見天下之賾하여 而擬諸其形容하여 象其物宜라. 是故謂之象이요, 聖人이 有以見天下之動하여 而觀其會通하여 以行其典禮하며 繫辭焉하여 以斷其吉凶이라. 是故謂之爻니,
이런 까닭에 대저 象은 성인이 천하의 깊은 이치를 볼 수 있어 그 모두를 形容에 비겨 그 물건의 마땅한 것을 본뜬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를 象이라 이르고, 성인이 이로서 천하의 움직임을 볼 수 있어 그 모이고 통하는 것을 관찰하여 이로서 그 典禮를 통하여 말을 매어서 그로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이를 爻라 한다.
○極天下之賾者는 存乎卦하고 鼓天下之動者는 存乎辭하고,
천하의 깊은 이치를 극진히 하는 것은 괘에 있고, 천하의 움직임을 鼓舞하는 것은 말에 있고,
○化而裁之는 存乎變하고 推而行之는 存乎通하고 神而明之는 存乎其人하고 黙而成之하며 不言而信은 存乎德行하니라.
化하여 裁制하는 것은 變하는데 있고, 推移해서 行하는 것은 通하는데 있고, 신묘함을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고, 묵묵히 이것을 이루며 말하지 아니하여도 믿는 것은 德行에 있다.
[註] 卦, 爻 가 소이 변하여 통하는 것은 사람에 있고, 사람이 소이 신묘할 수 있어 이를 밝히는 것은 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