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노트 73
繫 辭 傳 上
繫辭는 본래 文王과 周公이 지은 말로서 卦, 爻의 아래 것이며 곧 지금의 經文이다. 이 편은 공자께서 기술한 繫辭의 傳을 말하는 것이다. 이로써 그 한 經의 大體와 凡例를 通論한 것으로 가히 經에 붙이지 않고 스스로 上12章, 下12章으로 나누어 말했다.
第 一 章
〇天尊地卑하니 乾坤이 定矣요, 卑高以陳하니 貴賤이 位矣요, 動靜有常하니 剛柔斷矣요, 方以類聚하고 物以羣分하니 吉凶이 生矣요, 在天成象하고 在地成形하니 變化見矣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乾과 坤이 정해졌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베풀어지니 귀하고 천한 것이 자리를 얻었다. 움직이고 고요한 것은 항상 있으니 剛과 柔로 결단한다. 지향하는 바로서 同類를 모으고 物의 善惡으로써 무리를 나누니 吉하고 凶함이 생겼다. 하늘에서는 形象을 이루고 땅에서는 形體를 이루어 변화를 나타낸다.
❲註❳ 天地란 것은 陰陽의 形과 氣運의 實體이고, 乾坤이란 것은 易가운데 純陰⦁純陽의 卦 이름이다. 낮고 높다는 것은 天地의 사이에 있는 萬物의 자리이고, 貴賤은 易가운데 卦, 爻와 上 , 下의 자리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陽 의 떳떳함이요, 고요하다는 것은 陰의 떳떳함이다. 剛과 柔는 易가운데 卦爻, 陰陽을 일컬은 것이다. 方은 일의 情이 向하는 바를 말한 것인데, 말하자면 사물의 善惡으로서 각각 類를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吉, 凶은 易가운데 占으로 결단하는 말이다. 象이란 것은 日, 月, 星, 辰에 속하는 것이고, 形이란 것은 山, 川, 動物, 植物에 속하는 것이다. 變化라는 것은 易가운데 蓍策과 卦爻에 陰이 변하여 陽이 되고, 陽이 변하여 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聖人이 易을 지어서 陰陽의 實體로 인해 괘효의 法과 象이 된 것을 말한다. 莊周가 이른바 易을 陰陽의 道로서 말한 것이 이것이다.
〇是故로 剛柔相摩하며 八卦相盪하여,
이런 까닭에 剛과 柔가 마치 서로 미치고, 八卦가 서로 움직인다.
❲註❳이것은 易에서 卦의 변화를 말한 것이다. 64卦의 처음에는 剛, 柔 두 획일 뿐인데 둘이 서로 미쳐서 四가 되고 四가 서로 미쳐서 八이 되니 또한 서로 움직여 64가 되었다.
〇鼓之以雷霆하며 潤之以風雨하며 日月이 運行하며 一寒一暑하여,
울리는(鼓動) 것은 번개와 우뢰로서 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은 바람과 비로 하며 해와 달이 운행하여 한 번 추우면 한 번 덥게 한다.
❲註❳ 이것은 변화가 象을 이루는 것이다.
〇乾道成男하고 坤道成女하니,
乾의 道가 남자를 이루고, 坤의 道가 여자를 이루니,
❲註❳ 이는 변화가 형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 두 절은 또한 역의 실체를 들어 내어 밝힌 것이다.
〇乾知大始요, 坤作成物이라.
乾은 위대한 시작을 알게 하고, 坤은 만물을 지어 만든다.
❲註❳知는 주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乾은 物의 시작을 주로 하고, 坤은 이것을 지어서 이룬다. 男女는 上文을 이어서 乾坤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대개 모든 物은 陰陽에 속하는 것으로 이와 같이 않은 것이 없다. 대저 陽을 먼저하고 陰을 뒤로 하여, 陽은 베풀고 陰은 받는 것이니, 陽 의 가볍고 맑은 것은 形體가 없으나 陰의 무겁고 濁한 것은 자취가 있는 것이다.
〇乾以易知요, 坤以簡能이니,
乾은 쉬운 것으로서 알고, 坤 은 간단한 것으로서 능함이니,
❲註❳ 乾은 健하게 움직이며, 곧 그 아는 바가 物의 시작에 편리할 수 있어 어려운 바가 없다. 그러므로 쉬운 것으로서 위대한 창조를 맡게 되고, 坤은 順하고 고요하여 무릇 그 능한 바가 다 陽을 좇아서 스스로 짓지 않는다. 그러므로 간단한 것으로서 능히 만물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〇易則易知요, 簡則易從이요, 易知則有親이요, 易從則有功이요, 有親則可久요, 有功則可大요, 可久則賢人之德이요, 可大則賢人之業이니,
쉬우면 알기 쉽고, 간단하면 따르기 쉬우며, 알기 쉬우면 친함이 있고, 따르기 쉬우면 공이 있다. 친함이 있으면 가히 오래할 것이고, 공이 있으면 가히 클 것이다. 가히 오래 할 수 있으면 賢人의 德이요, 가히 크게 할 수 있으면 현인의 業이다.
❲註❳ 사람이 하는바가 乾의 쉬움과 같다면 그 마음이 명백하여 사람이 서로 알기 쉽고, 坤처럼 간단하면 그 일이 요약되어 사람이 좇기가 쉽다. 알기 쉬우면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할 者가 많다. 그러므로 친함이 있어 좇기 쉬우면 더불어 협력하는 者가 많다. 또한 공이 있고 친함이 있으면 안으로부터 한결같은 까닭에 가히 오래하고, 功이 있으면 밖으로부터 兼하기 때문에 크게 된다.
〇易簡而天下之理得矣니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니라.
쉽고 간단해서 천하의 이치를 얻는다. 천하의 이치를 얻으면 그 가운데 자리가 이루어진다.
❲註❳ 자리를 이룬다는 것은 사람의 자리를 이룬다는 것을 말한다. 그 가운데라 한 것은 天地의 가운데를 말한다. 이에 이르면 道를 체득한 극진한 功이요, 聖人의 일에 능한 것이니 이로서 가히 천지와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 이 章은 造化의 實로서 經을 지은 理致를 밝히고 또한 乾坤의 이치를 天地에 나누어 들어내고 兼하여 體得한 것을 말한 것이다.
第 二 章
〇聖人이 設卦하여 觀象繫辭焉하고 而明吉凶하며.
성인이 卦를 베풀어서 象을 살펴보고 繫辭를 지어서 吉凶을 밝히며,
❲註❳ 象이란 사물과 흡사한 것이다. 이것은 聖人이 易을 지은 것을 말한 것이며, 卦와 爻의 象을 살펴보고 그로서 말을 지은 것이다.
〇剛柔相推하여 而生變化하니,
剛과 柔가 서로 推移하여 변화를 발생하니,
❲註❳ 卦爻의 陰陽이 서로 미루어 움직여서 陰이 혹은 陽으로 변하고, 陽이 혹은 陰 으로 化하는 것을 말한다. 聖人이 소이 象을 살펴보고 말을 지으니 많은 사람이 소이 占을 치는 것으로 인하여 卦를 구하는 것이다.
〇是故로 吉凶者는 失得之象也요, 悔吝者는 憂虞之象也요,
이런 까닭으로 길흉이란 것은 잃고 얻는 象이요,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象이다.
❲註❳ 吉凶과 悔吝이란 것은 易의 말이며, 得失로 憂虞하는 것은 일이 변하는 것이니, 얻으면 吉하고 잃으면 凶하니 憂虞하는 것은 비록 凶에 이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나 이미 그로써 족히 뉘우침에 이르니 부끄러움을 취한 것이다. 대개 吉凶은 相對하여 뉘우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그 가운데 있고, ‘뉘우친다’는 것은 凶으로부터 吉한 데로 옮겨가는 것이요, ‘부끄럽다’는 것은 吉한 것으로부터 凶한대로 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이 卦爻를 살피는 가운데 혹 이 象이 있으면 그로써 이 말을 지은 것이다.
〇變化者 는 進退之象也요, 剛柔者는 晝夜之象也요, 六爻之動은 三極之道也니,
변화하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가는 象이요, 剛과 柔라는 것은 낮과 밤의 象이요, 六爻가 움직이는 것은 三極의 道가 움직이는 것이다.
❲註❳ 柔가 변하여 剛에 옮겨가는 것은 물러나기를 다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剛이 化하여 柔에 柔에 나아가는 것은 나아가기를 다하여 물러나는 것이며, 이미 변하여 剛이 되면 낮이고 陽인 것이다. 이미 化하여 柔가되면 밤이고 陰인 것이다. 六爻에서 初爻와 二爻는 地가 되고, 三爻와 四爻는 人이 되며, 五爻와 上爻는 天이 된다. 動은 곧 변화이다. 極은 지극한 것이다. 三極은 天 · 地 · 人의 지극한 이치니 三才는 각각 하나의 태극인 것이다. 이것은 剛柔가 서로 推移하는 것으로써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밝혀 변화가 다하면 다시 剛과 柔가 되어서 한 괘의 六爻사이에 흘러간다. 그리고 占은 所値를 얻는 것으로 인하여 그로써 吉凶을 판단한다.
〇是故로 君子所居而安者는 易之序也요, 所樂而玩者는 爻之辭也니
이런 까닭으로 군자가 거처하는 바가 편안한 것은 易의 차례를 봐야하고 즐거운 바로 玩味한다는 것은 爻를 살펴본다는 말이다.
❲註❳ 易의 序는 卦爻에 나타나는바 事理의 당연한 차례를 말한다. ‘玩’은 살피는 것이 자세한 것이다.
〇是故로 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하고 動則觀其變而玩其占하나니 是以自天佑之하여 吉无不利니라.
이런 까닭에 군자가 거처할 때에는 그 象을 살펴보아 그 말을 玩味하고 움직이면 그 변하는 것을 살펴보아 그 占을 玩味하나니, 이로써 하늘이 도우니 吉하고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註❳ 象의 말이 변하는 것은 이미 위에서 나타났다. 무릇 다만 변하는 것을 말한 것은 변화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占은 그 所値의 吉凶을 결단한 것이다.
✻ 이 章은 聖人이 易을 짓고 君子가 易을 배우는 일을 말한 것이다.
第 三 章
〇彖者는 言乎象者也요, 爻者는 言乎變者也요
彖이란 것은 象을 말한 것이요, 爻란 것은 변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註❳ 彖(단)은 卦辭(괘사)를 말한 것으로 文王이 지은 것이요, 爻는 효사를 말한 것으로 周公이 지은 것이요. 象은 卦 全體를 말한 것이며, ‘변한다’는 것은 一節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〇吉凶者는 言乎其失得也요, 悔吝者는 言乎其小疵也요, 无咎者는 善補過也니,
吉凶이라는 것은 그 잃고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悔吝(회린)이라는 것은 그 작은 흠을 말하는 것이요, 无咎(무구)라는 것은 善으로 허물을 보충하는 것이다.
〇是故로 列貴賤者는 存乎位하고 齊小大者는 存乎卦하고, 辯吉凶者는 存乎辭하고.
이런 까닭으로 귀하고 천한 것을 벌려놓은 것은 괘에 있고, 길흉을 분별하는 것은 말(辭)에 있다.
❲註❳ 位는 六爻의 자리를 말한다. 齊는 定의 뜻과 같다. 小는 陰을 말하고 大는 陽을 말한다.
〇憂悔吝者는 存乎介하고, 震无咎者는 存乎悔하니,
뉘우치고 부끄러워함은 근심하는 것은 善惡을 구별하는데 있고, 허물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것은 뉘우침에 있으니,
❲註❳ 介(개)는 분별하는 단서를 말한 것으로, 대개 善惡이 이미 움직여 形體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때이다. 이에 근심을 하면 뉘우치는 부끄러움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震(진)은 움직이는 것이니 뉘우칠 줄 알면 행동으로써 그 허물을 보충하는 마음이 있어 그로서 가히 허물이 없는 것이다.
○是故로 卦有小大하여 辭有險易하니 辭也者는 各指其所之니라.
이런 까닭으로 괘의 크고 작은 것이 있으며 말에는 험하고 쉬운 것이 있으니 말이란 것은 각각 그 가는 바를 가리켰다.
[註] 小는 險하고, 大는 쉬운 것이니 각각 향하는 바를 따른 것이다.
※ 이 장은 괘, 효사의 통례를 풀이한 것이다.
第 四 章
○易이 與天地準이라. 故로 能彌綸天地道하리라.
역은 하늘과 땅에 비준함이다. 그러므로 능히 天地의 도를 두루 다스려 짠다.
[註] 易書의 괘효에 天地의 道를 갖추어 그로 더불어 가지런히 평준했다. 彌는 彌縫의 彌와 같아 마침내 연합하는 뜻이 있고, 綸은 선택하는데 條理의 뜻이 있다.
○仰以觀於天하고, 附以察於地理라. 是故로 知幽明之故하며 原始反終이라. 故로 知死生之說하며 精氣爲物이요, 游魂爲變이라. 是故로 知鬼神之情狀하나니라.
우러르는 것으로써 天文을 살펴보고 구부리는 것으로써 地理를 살핀다. 이런 까닭으로 幽明의 연고를 알 수 있으며, 처음을 근원으로 하여 나중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이치를 알고 精氣는 物이되고 遊魂은 변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鬼神의 情狀을 아는 것이다.
[註] 이는 이치를 궁리하는 것이다. 以는 易의 書이다. 易은 陰陽뿐이다. 幽明, 生死, 鬼神은 모두 陰陽이 變하는 天地의 道이다. 天文에는 곧 낮과 밤과 上下가 있고, 地理에는 곧 동서남북과 높고 낮음이 있다. 原이라는 것은 前에서부터 그것을 推理하는 것이요, 反이라는 것은 나중에 긴요한 것이다. 陰의 精과 陽의 氣를 모아서 物을 이루니 神이 펴는 것이다. 魂은 노닐고 魄은 돌아가 흩어지면 변하게 되니 鬼가 돌아가는 것이다.
○與天地相似라. 故로 不違하나니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라. 故로 不過하며 旁行而不流하여 樂天知命이라. 故로 不憂하며 安土하여 敦乎仁이라. 故 能愛하나니라.
天地와 더불어 같기 때문에 어기지 않고, 만물이 두루하여 天下를 구제하는 道를 안다. 그러므로 지나치지 않으며 두루 행하여도 흐르지 않아 天命을 알고 즐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않으며, 자기의 있는 바의 분수에 편안해서 仁에 돈독함이다. 그러므로 능히 사랑한다.
[註] 이는 聖人이 品性을 극진히 하는 것이다. 天地의 道는 仁을 알 뿐이며 두루 만물을 아는 것은 하늘이다. 道로서 天下를 구제하는 것은 地이다. 또한 仁을 알면 알아서 지나치지 않는다. ‘旁行’은 權道를 행 할 줄 아는 것이다. 不流는 正을 지키는 仁이다. 이미 天理를 즐기면 또한 天命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능히 근심함이 없고 그 지혜는 더욱 깊이 거처하는데 따라 모두 편안하여 한 순간도 不仁함이 없다. 그러므로 그 物을 구제하는 마음을 잊을 수 없어 더욱 仁에 득실해 진다. 대개 仁이란 사랑하는 이치요, 愛란 것은 仁의 쓰임이다. 그러므로 그 서로 위하는 表裏가 이와 같다.
○範圍天地之化而不過하며 曲成萬物而不遺하며 通乎晝夜之道而知라. 故로 神无方而易无體하나니라.
天地의 造化를 範圍로 해서 지나치지 않으며, 만물에 曲盡하게 이루어져서 남기지 않으며, 낮과 밤의 道에 통해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神은 方位가 없고 易은 體가 없다.
[註] 이는 聖人이 命을 섬기는데 지극한 것이다. ‘範’은 마치 쇠를 녹인 주물로 법의 모형이 있는 것과 같고, 圍는 匡郭이다. 天地의 變化가 무궁하여 聖人의 範圍가 되고, 中道에 지나치지 않는 것으로 하여금 이른바 마름질함을 이룬 것이다. ‘通’은 兼하는 것과 같다. 晝夜는 곧 幽明, 生死, 鬼神을 말한다. 이와 같은 연후에 가히 지극한 神의 妙함을 보는 것은 方所가 있지 않다. 易의 變化는 形體가 있지 않다.
※이 장은 易의 道가 큰 것을 말한 것이니 聖人이 사용한 것이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