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張家界) (2009. 4. 14)
장가계행 비행기는 국내선인데도 오히려 인천공항에서 북경을 운행하는 비행기 보다는 더 좋았다. 마침 저녁 시간대라 기내식으로 나누어주는 식사도 먹을 만 하였다. 나는 남김없이 모두 다 먹었다.
장가계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넘었다. 마중 나온 가이드의 중형 버스로 천궁호텔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 되었다 저녁은 기내식으로 때우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장가계는 호남성 서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경 109도 4분에서 111도 20분, 북위 28도 52분에서 29도 40분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준 아열대에 속하는 관계로 여름에는 더워서 관광하기 힘들다고 하며, 일 년에 200일 정도는 비가 오는 곳이라고 한다.
장씨의 마을이라는 장가계는 BC200년경 천하를 통일한 유방은 같이 천하통일을 도모했던 한신, 소하, 장량을 내치려고 계획을 세우니 장량은 이를 먼저 알고 정가계로 피신을 하였으나 한신과 소하는 유방 밑에서 권력을 누리려다 죽임을 당하는 소위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성어를 남기었다. 유방은 도망간 장량을 찾아 장가계까지 치려하였으니 장량은 원주민인 소수민족 토가족과 힘을 합해 함남한 지형을 이용 유방의 군대를 물리치고 토가족과 같이 장가계에 눌러 살았음으로 이곳을 후세 사람들이 장씨마을 즉 장가계(張家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장가계의 무릉원은 세 개의 자연보호구 즉, 장가계 국가산립공원, 천자산 자연보호구, 삭계곡 자연보호구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 자연 보호구의 면적이 500K㎡에 달하고 있어 관광자원은 세계에서 그 류를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관광지를 풍경구라 부르는데 핵심 풍경구는 264K㎡나 되며, 1980년 이곳이 발견되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개발을 하고 있는 곳이 있다.
중국 국무원은 1994년에 장가계시로 승격시켰으며, 전체 인구는 약 153만명인데 2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토가족이 약 70%에 달한다고 한다. 장가계는 지금부터 약 3억 8천만 년 전에 망망대해였으나 지각변동으로 해저가 솟아올라 지금의 삼천기봉을 만들었고, 800계류가 흐르고 있는 무릉도원을 형성하여
십리화랑(十里畵廊)
이튼 날 아침 7시에 호텔을 나와 먼저 찾아간 곳은 10리화랑(十里畵廊), 계곡을 따라 마치 화랑모양으로 양쪽의 산수가 아름다워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5Km에 달하는 계곡에 모노레일이 깔려 있는데 우리는 이 모노레일을 타고 세 자매 바위가 있는 곳까지 왕복하기로 했다.
모노레일 옆에는 일반 등산로가 잘 다듬어져 있는데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걸어서 오르내리며 주위의 풍광을 사진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십리화랑에서 나와 우리는 보봉호로 갔다. 보봉호는 해발 485m 고지에 있는 호수로 암벽을 인공적으로 뚫어 폭포를 만들고 호수의 물은 호수 밑바닥에서 샘이 솟아올라 보충된다고 한다. 바위 중간을 뚫어 만든 폭포 옆을 돌아 약간은 힘들지만 걸어올라 가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우리 일행은 걸어 오르기로 했다.
입구에서부터 말로만 듣던 가마꾼이 끈질기게 좇아오면서 가마를 타라고 권하고 있으나 거절하고 조금 올라가니 산모퉁이를 돌아 힘들지 않게 보봉호 선착장까지 갈 수 있었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은 80%가 우리 한국인이다. 들리는 소리도 전부 우리 말 뿐이고, 호객꾼들도 모두 한국 화폐단위인 천원, 천원 하고 있다. 선착장에서 유람선도 모두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 만원을 이루고 있어 마치 한강이나 해운대에서 유람선을 탄 것 같이 낯설지가 않았다.
이 호수에는 울음소리가 애기 울음소리 같고 생기기도 애기와 흡사한 애기 고기가 살고 있다고 한다. 뱃전에 흩어지는 물결에는 많은 꽃잎들이 떠있어 마치 무릉도원에 와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눈길이 닫는 곳마다 형용할 수 없는 기암과 절벽들은 금강산 만물상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마음을 압도한다. 하늘을 찌를 듯이 수면에서 바로 서있는 장관이란 언어를 잊어버리고 그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유람선 안에서는 자연과 어울리지도 않는 노래자랑이 이루어지고 있어 모처럼의 좋은 풍광을 즐기는 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한 낮인데도 계곡이 깊어 산 그림자가 호수 바닥에 깔리고 있어 건너편 산봉우리에 걸린 태양광선이 눈이 부시고 고개를 한껏 제치고 보노라니 고개가 아파오고 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배에서 내리니 내려오는 길은 절벽에 나선형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계단만 보고 내려오니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내 사진을 열쇄 고리에 넣어가지고 ‘천원’ ‘천원’ 하면서 내밀고 있다. 중국 사람들도 관광지의 상술에는 역시 동작 하나는 빨랐다.
보봉호에서 내려와 우리는 우리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국식 점심을 김치를 곁들여 맛있게 먹고 용왕동굴을 향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