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정신

선비정신

율길 2014. 4. 12. 09:48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선비정신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선비()로 이해되고 있다. 선비는 오늘날의 왜소한 지식인과 곧잘 비교된다. 특히 꼿꼿한 지조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 않던 강인한 기개, 옳은 일을 위해서는 사약 등 죽음을 불사하던 불요불굴의 정신력, 항상 깨어있는 청정한 마음가짐으로 특정 지워진 선비상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제시대와 광복 후 현대사의 전개과정 속에서 지식인들이 보여주었던 체질적 한계와 현실 타협적 처신은 전통시대 지식인인 선비와 비교되면서 선비정신에 대한 재조명이 요청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란 신분적으로는 양인(良人)이고 경제적으로는 농촌 지방의 중소지주층 출신이 주류이다. 조선의 국학(國學)이던 성리학을 주전공으로 하여 그 이념을 실천하는 학인이었다. ()의 단계에서 수기(修己)하고 대부(大夫)의 단계에서 치인(治人)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본으로 삼아 학자관료인 사대부(士大夫)가 되는 것을 최종목표로 하였다. 자신의 인격을 도야하는 수기가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만 다름 사람을 다스리는 치인의 단계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었음으로 수기가 전제되지 않은 치인은 성립될 수 없었다. 또 치인이란 남을 지배한다거나 통치한다는 권력개념보다는 지식을 닦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군자가 되어 백성()을 위하여 이바지하는 봉사행위로 이해되었다.

그들은 민본주의에 입각한 이상향의 건설을 지향하였다. 그 이상향은 역사적으로 요순삼대에 이 세상에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였다. 따라서 수기가 제대로 된 선비, 즉 군자가 치인의 단계에서 해야 할 일은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한 바 있으므로 실현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인식되는 이상향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세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사고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향하여 분골쇄신해야 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대부였다.

선비의 부득이한 선택으로 은일(隱逸)이 있다. 국가를 경영할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난세를 당하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는 인식하에 초야에 은둔해 있던 선비를 말한다. 은사(隱士), 일사(逸士), 유일(遺逸)로도 불린다. 이들은 부덕하고 무모한 통치자가 권력을 휘두를 때 정치판에 나아가는 일을 거부하였다. 부도덕한 폭정을 도와주는 결과를 우려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오염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꺾일망정 휘어지기를 거부하고 독야청청하고자 하는 그 자존심은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옥자(전 국사편찬위원장. 우당역사문화강좌 중에서 발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