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묘제 지내는 날

율길 2009. 12. 4. 10:16

묘제(시향) 지내는 날

우리 진천송씨는 타 성씨와 같이 음력 10월 초 하루부터 시작되는 묘제는 대부분 15일이 되면 끝이 난다.

내가 속한 참의공파는 음력 10일에 충북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에 있는 관조(貫祖) 이신 휘(諱) 인(仁)자 할아버지의 시향을 시작으로 같은 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광동리에 설단으로 모신 휘 명고(命古) 헐아버지외 7위분의 묘제를 묘하에서 모시고 12일에는 경기도 가평군 상면 율길리에 입향조(入鄕祖)이신 나에게는 11대조가 되시는 휘 안경(安敬) 할아버님을 위시하여 6대조까지 해당 손들이 모여 재실에서 재사(齋祠) 봉행(奉行)으로 모시고 13일 부터는 각자 문중별로 나누어 모시고 있다.

나는 15일에 우리 재실 유목재(楡木齋)에서 5대조와 3대조(증조)까지 모시고 있다.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4촌(載莘)을 만나 그의 차로 재실에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이었다. 재실에서는 한창 제수(祭需) 음식을 준비하느라 집안 제수(弟嫂)들과 질부(姪婦)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집안 동생들은 제수 고임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준비된 제수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사촌 재신은 지방과 축문을 준비하였다. 11시가 되자 우리 당내의 제관들이 20여명 도착하여 제향을 올리기 시작하였다.

먼저 5대조이신 정민(廷敏)공의 제향에서 초헌은 종손인 재신, 아헌은 내가, 종헌은 재옥 형님이 봉행하였고, 축은 내가 독축하였다. 축문은 :

維檀君紀元4342年己丑 10月丙寅朔 15日庚辰 五代孫載莘敢昭告于

顯五代祖考 學生府君

顯五代祖妣 孺人平山申氏 氣序流易 霜露旣降 齋舍封享 不勝感慕 謹以 淸酌庶羞 祗薦歲事 尙饗

제향이 끝나고 음복을 하면서 문중 회의가 있었다. 회의에서는 종재의 운영방법과 제수준비에 애쓰는 묘하(墓下)에 사는 친척들에게 수고비 지불 문제를 협의했다.